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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복지로 청소년 알바·노인 취업…노동 사각지대 ‘세대별 노조’ 뜬다

협의회 0 2,687 2014.03.10 10:26
 
올해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민영(가명·18)씨는 최근 임금체불 문제로 고민하다 친구의 소개로 청소년유니온을 찾게 됐다. "노조라고 하기에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빨간 띠 둘러맨 아저씨들이 잔뜩 있을 줄 알았거든요.”

이씨의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간 서울 영등포동 노조 사무실에는 전부 또래의 청소년들뿐이었다. 이씨는 단체가 소개해준 노무사에게서 법률 조언을 들었다. "처음에는 주휴수당(1주 동안 규정된 근무시간을 일한 노동자에게 하루치 유급 휴가를 인정해 주는 수당)이 뭔지도 몰랐어요. 노동법은 학교에서 대충 교육하고 넘어가서 내용도 몰랐고요. 이런 또래 노조들이 확대되면 저 같은 특성화고 졸업생처럼 일찍 취업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아직 앳된 목소리의 이씨는 처음으로 접한 노동조합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만 15~24살 청소년만을 조합원으로 하는 청소년유니온이 5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남부지청에 정식으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청소년유니온은 지난해 신고필증을 받은 청년유니온과 노년유니온에 이어 ‘세대별 노조’를 표방하는 3번째 노동조합이다. 조합원은 현재 24명으로, 대부분 고졸 취업자 및 구직자다. 청소년유니온은 청년유니온의 청소년사업팀이 확대 분리돼 만들어졌다.

청소년유니온 김종하 위원장은 "앞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및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의 노동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학생들의 노동인권 교육을 강화하는 운동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39살까지가 가입 조건인 청년유니온은 청년층에 집중하고, 고졸 취업자 및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노동인권은 청소년유니온이 전담한다는 취지다.

청소년유니온이나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 같은 세대별 노조는 사업장 단위로 구성되고, 정규직에 무게중심을 둔 기존 노조운동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노동 사각지대’에서 싹텄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초대 위원장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주변부 노동자들이 모인 노동조합이었다”고 2010년 설립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청년·청소년들을 노조로 뭉치게 한 사회적 배경은 청년실업이다. 지난 1월 15~29살 청년 실업률은 8.7%이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실업률은 더 높다. 이들의 일자리 자체가 시간제·단기계약직·인턴제 등 비정규직과 실직을 오가는 탓이다. 기존 노동조합이 이들을 받아안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변동이 심화된 일자리 구조의 최대 피해자인 청년 구직자들에겐 소속된 사업장 자체가 없다. 기업이나 산업별로 조직된 기존 노조에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노년유니온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은 급격히 증가하고 각종 복지제도에 대한 노인층의 목소리를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처장은 "대부분 조합원들은 퇴직 뒤 노후 소득과 의료비를 걱정하는 분들이다. 조합 정책의 목표도 기초노령연금 개정 등 노인 복지에 맞춰져 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조합원들이 많지만 복지 문제만큼은 합리적인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세대별 노조의 출현이 비정규직 양산 등 갈수록 열악해지는 고용 상황이 불러온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본다. 고용의 질이 저하되면서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처한 노동자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청년·노년층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변하는 노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문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비정규전략본부 국장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정당한 노동조건을 보장받기 힘든 세대들의 단결이 절실하게 요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세대별 노조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인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같은 연령이라 할지라도 학력, 사는 곳, 경제적인 조건, 직업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을 지속적으로 묶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등 노동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이슈별 프레임을 짜 조직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연대의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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